10년된 애니에 이제야 꽂혀서 아예 카테고리 팠다.
트위터에서도 말했지만 보라색 단발 머리 비인간 속성에 꽂힌 건 아니라고 하고 싶다.
(20년 전 같은 외형의 전혀 다른 성격의 비인간 캐릭터를 너무나 좋아했던 건 흑역사다)
트위터에는 장문의 리뷰는 불가능하니까 이글루스에 오랜만에.
이글루스 아직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자존감은 낮고, 프라이드는 높다. 자기 자신이 아니라 자기가 맡은 역할에 대한 자긍심으로 살아간다. 그것은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 이노베이드이기 때문이지만 태어나서 바로 노출된 환경이 솔레스탈 빙이니까, 목적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사람들하고만 부딪쳐 왔으니까 그 부분은 변하지 못하는 게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베다를 잃은 후, 자신이 쓸모 없어졌다고 절망하는 티에리아에게 닐은 분명, 그가 다시 싸울 수 있는 힘을주었지만 닐은 아무래도 다메오토코…….
1기의 닐을 보면 굉장히 뭔가 챙겨주는 거 같고 좋은 형 같아보이지만, 대사들 보면 미묘하게 미션을 달성하기 위한 행위라고 해야 하나, 모두 좋게좋게, 직장에서 업무 분위기 흐트러트리지 않기 위해 적당히 신입들 챙겨가며 일하는 선임 같은 거리감이 있다. 그렇지만 그런 예의상의 좋은 면에 신입들은 반해버리는 거지.
업무상의 어드바이스라면 얼마든지 해주지만 그 이상은 파고들려고 하지 않고, 스스로도 내보이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 나쁜 남자에게 어째서 아이들은 의지하고 만 걸까. 그래도 좀더 나은 어른이 솔레스탈 빙엔얼마든지 있는데. 과거에 머물러 있는 인간이 아니라 미래를 보고, 자신을 도구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자신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 있는데. 나쁜 남자의 매력이라는 건가. 동질감이라는 건가.
"뭐 상관 없잖아, 단순히 접속 못하는 것뿐이야. 우리랑 똑같아진 거라고."
"하지만 베타가 없으면 이 계획은-,"
"가능해. 전쟁근절을 위해 싸운다, 건담을 타고."
"하지만, 실현 가능성이-,"
"이러쿵저러쿵하지 말고 해보면 되잖아. 좋은 모델이 바로 옆에 있으니까. 제 생각대로 무작정 밀어붙이는멍청이가 말이야."
아무튼 결국은 건담마이스터. 베다를 상실한 티에리아에게 해줄 충고로는 너무나 적절하지만, 뭐랄까 건담마이스터 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같은 이 아슬아슬함. 세츠나 같은 걸 모델로 삼으라니 너무한 거 아닌가.
건담 마이스터가 아닌 자신은 생각할 수가 없다. 인류의 혁신을 위해, 진정한 이오리아 계획을 위해 무엇이든 한다. 베다가 없어도, 육체가 없어도.
2기에서 굉장히 완성되어 모두들 티에리아가 어른스럽다고, 완성된 인격체 같다고 말하지만, 내게는 그 확고한 신념이 조금 슬프다. 아무래도 티에리아에게는 세츠나의 그녀 - 마리나처럼 그런 거 안 해도 된다고, 그곳에서도 네가 행복하길 바란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1기의 닐이 애들 챙겨줬다고 하지만그런 대사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이 아이에게 다른 가능성을 조금은 보여줘도 되었던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밀레이나가 티에리아가 어떤 모습이라도 좋아한다고 외쳐준 건 그런 면에서는 조금 다행일까.
그치만 기본적으로 펠트랑 밀레이나 생각하면 더 우울한 게 얘네들 솔레스탈 빙에서 자라서 솔레스탈 빙밖에 몰라. 티에리아도 마찬가지고, 그 와중에 티에리아는 부모고 뭐고 없고 ㅠ,ㅠ 너무해 진짜. 인간의 삶이라는 거 너무 경험해본 적이 없는데 닐이 말해준 그 피상적인 거만 믿고, 이 아이가 자기는 인간이라고 말하는거 우쭈쭈해주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안타까운 거.
어린 아이일 때는 부모가 한없이 강해보이고 커보이는 것처럼, 피상적으로 잘해주는 다메오토코 닐에게 맹목적인 신뢰를 갖게 된 티에리아가 닐의 어두움을 알 만큼 자라기도 전에, 닐은 죽어버렸다. 영원히 자랄 기회를 놓친 채로 티에리아는 닐에게 붙들렸다.
"어느 곳에 있든지 당신의 행복을 빌겠습니다."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싸우라고 말해주는 사람밖에없다. 아무도 그에게 다른 길이 있다고 말해주지 않는다. 안 그래도 세츠나보다 더 세상이 좁은 애인데.
스스로 선택한 길인 건 확실한데, 물론 흔들림도 있었고, 고뇌도 있었지만 그건 모두 '어떻게 목표에 도달할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일 뿐. 어떤 목표를 설정할 것인지는 결국 이노베이드, 만들어진 그대로라는 거.
더블오 전체가 이오리아 계획의 망령에 휘둘리고 있지만, 그렇지만 나는 좀더 이오리아 슈헨베르그가 이모든 판을 다 짜놓았다기보다는 중심 줄기-GN드라이브와 이노베이드, 베다를 통해 인류가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미래를 일군다-만 세우고, 리본즈나 세츠나 들이 한 것처럼 솔레스탈 빙의 기치 아래 모인 여러 사람들이각자 아이디어를 보태어 이오리아 계획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티에리아가 좀더 일상적인 것들에 욕구를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싶다. 세츠나도 그렇지만, 세츠나는 자기 세계가 너무나 좁다는 걸 잘 알고 있고 그 밖에 다른 좋은 것들이 많은 것도 알고 있지만 그것을 포기하고 이길을 걷는다고 하면, 티에리아는 자신의 세계가 너무 좁다는 것도 다른 좋은 것들도 많다는 것도 잘 모르니까 그런 모든 것을 알고 느끼고 나서 싸우는 길을 선택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가 지키고자 하는 건 너무 한줌이라서 - 닐의 충고, 세츠나의 목표, 솔레스탈 빙. 정말 그것밖에 없는 느낌이라 어린애한테 싸움시키는 느낌이라 좀 그래. 장하긴 한데.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