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비니아 읽는 중! 소설

오오! 라비니아! 

역시 어슐러 르귄은 최고다! ㅠ,ㅠ 눈물나.. 아껴읽어야 할 거 같은데 뒷내용은 궁금해! 아이네아스의 모험에 대해 잘 모르는 무식함이 차라리 다행으로 여겨진다. 신들을 섬기는 고대 세계의 모습이 선연하게 나타나서 너무 좋다. 이런 글 읽고 싶었다. 풍속지 같은 밀도의 묘사 ;ㅁ; 내 사랑!!!! 천천히 곱씹어 읽어야지. 

계속 읽으면서 A, B, C 들이라고 '들'이 띄어쓰기 되어 있는 게 신경 쓰였는데 오늘 사전을 찾아보니 복수를 일컫는 접미사말고 '두 개 이상의 사물을 나열할 때, 그 열거한 사물 모두를 가리키거나, 그 밖에 같은 종류의 사물이 더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라는 의존명사가 하나 더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새로운 발견. 어색하니까 기억해 둬야지.


다 읽었다! 감동적이나. 그래 삶을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지.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자세한 감상은 천천히 올리리. ㅠㅠ 라비니아를 읽고도 의욕이 50%도 안 찬듯하다니... 현재 영혼이 정말 논바닥 갈라지듯 쩍쩍 갈라져 메마른 모양이다.

최근 구매 + 읽은 도서 새롭게 업뎃! 책 혼합

알라딘 중고서점에 처음으로 방문했다. 해버렸던 것이다.

브레이브 스토리/미야베 미유키 1~4권
색맹의 섬/올리버 색스
홀로 남겨져/미야베 미유키

를 질렀다. 아직 전에 산 것도 다 안 읽었는데... 이게 뭐하는 짓이지. 홀로 남겨져는 다 읽었다. 괴담류인데 추리/범죄 요소가 섞였다. 전반적으로 너무 쓸쓸해서 제목이 참 잘 어울린다 싶었다. 대답은 필요없어 같은 것보다 훨씬 진득진득하고 섬뜩한 단편 소설들이었다. 낙원이랑 이 단편집이랑 어느 게 우선일지는 몰라도... 초자연적 요소를 넣는다는 점에서 홀로 남겨져 쪽이 좀더 마음에 드는 건 역시 초자연적인 능력/현상 같은 건 강렬하지만 영향력이 짧기 때문일까. 원래 긴 호러영화보다 짧은 도시괴담이 사람들에게 더 널리 회자되는 것처럼.

현재는 색맹의 섬을 읽고 있다. 재미있다. 여행기이긴 여행기인데 신경과학자의 여행기이다보니 여행기인지 진료기록인지 가물가물하다.  다 읽었다! 주석마저도 알차고 재밌었다. 올리버 색스다운 인간애가 물씬 풍겨난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괌에서 몸이 마비되고(마비되었달까 마음대로 안움직인달까) 천천히 죽어가는 사람에 대한 친지들의 자연스러운 태도. 물론 그들도 고통스럽겠지만 그래도 함께하는 것이 좋아보였다.

이제 읽고 있는 건 저번에 산 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 안대회 선생님 글은 참 좋긔...

읽을 책이 많아서 기쁘다.

최근 읽은 독서 리스트 및 앞으로 읽을 리스트 책 혼합

요즘 책을 좀 적잖이 질렀는데 이러다가는 또 리뷰를 한참 안 쓸 거 같아서 위기의식에 리스트를 남겨 놓는다.

읽은 것
R.P.G.
미야베 미유키는 참 겉으로는 멀쩡한데 속이 이상하게 비뚤어진 사람도 잘만 그려내는구나 싶었다. 범인이 그토록 일그러지게 된 것이 어쩐지 이해가 되고, 그 주변 인물들 또한 어딘가 한두 군데씩 이상한데 그것이 이세상에 있지 않을 법한 게 아니라 너무 있을법해서 무서웠다. 범인이 누군지를 밝혀내는 것은 사실 그렇게 어렵지 않고, 좀 어이없는 함정도 있어서 범인과 트릭을 '추리'해 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별로 반기지 않겠지만 미야베 미유키식의 심리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무척 반길 만한, 임팩트 있는 작품이다. 아무래도 범죄 자체의 규모도 작고, 소설 자체가 벌어지는 배경도 좁으니까 이유나 모방범 같은 묵직함은 좀 덜하지만, 임팩트 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자기애에 대한 이야기이고 '온라인'에 대한 미야베 미유키식의 의견이 담긴 이야기이다.

빌 브라이슨의 아프리카 다이어리
얇다는 건 알았지만 생각보다 더 얇다! 아쉽다! 기부를 좀더 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는 점에서, 당장 아프리카로 자원 봉사를 떠나야할 것 같다는 점에서 이 책은 소정의 목적은 다하고 있다. 자기든 남이든 상관없이 폼재지 않고 우스꽝스럽게 표현하면서, 한편으로는 그 모든 것에 연민과 애정을 가진 빌 브라이슨 특유의 글솜씨가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준다.

발칙한 미국 횡단기
이것도 빌 브라이슨. 이 사람의 여행기는 이렇게 보니 대부분 다 산 모양이다. 영국 산책만 사면 되나. 읽고 있으면 신이 난다. 80년대의 미국 횡단기라 시기적으로는 조금 엇나가 있지만 당대의 백인 중산층-지식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참 잘 알 수 있다. 자연을 구경하러 가서 자연을 쓰레기장으로 만들고 오는 캠핑카족들, 무엇을 기념해야할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되는대로 만들어놓은 기념관들 등 관광지 특유의 풍경들. 그리고 부유한 휴양지의 쾌적한 광경과 대비되는 다운타운의 황폐와 원주민 보호구역의 메마름. 아주 쓸모 없고 이상한 물건일지라도 새로운 것이라면 아무튼 사고 싶어하는 소비문화까지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모든 것이 어딘가 조금 우스운 광경들뿐이다. 그렇지만 결국은, 오래쓴 물건을 욕하면서도 고쳐서 다시 쓰는 것처럼, 그에게는 미국이 왠지 애증의 대상인 것처럼 보인다. 오래전 떠났던 고향이라는 것일까. 뭔가 심각할 것같기도 하고 훈계조일 것 같기도 하지만 이남자는 그러는 법이 없다. 남들을 까는 만큼 자기의 어리석음을 더욱 깐다. 시행착오와 어리석은 미신과 착각, 오해들까지 날것 그대로 까발리며 웃음을 자아낸다. 읽다보니 기분이 좋아져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졌다. 

나츠메 우인장 1~11
나츠메가 친구와 마음을 터놓고 의지하게 되는 광경이 천천히 천천히 펼쳐진다. 하얀 도화지에 살금살금 투명하고 고운 색깔이 점점이 모습을 그려가는 것같이. 지금까지 중 가장 인상이 깊었던 것은 나츠메가 친구들에게 처음으로 자전거를 배우게 되던 때였다.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러 가자고 하자, 나츠메는 자전거를 못탄다고 말한다. 아직도 안 배웠냐고 묻는 아이들에게, 나츠메는 희미하게 웃으면서, "자전거는... 뒤에서 잡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배울 수 없잖아."라고 말한다. 나는 자전거를 탈 줄 모른다. 엄마나 아빠는 바쁘고 오빠가 유일하게 나랑 놀아주었는데, 오빠는 딱 한번 나에게 자전거를 가르쳐주다가, 한 30분만에 포기했던가? 내가 포기했던가? 너무 무서워서. 아마도 오빠를 믿지 못했던 걸까? 그저 단순히 내게 균형감각이 지독히 없어서 그랬을지도 몰라. 근데 아무튼 자전거를 배우려면 넘어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필요한 거 같다. 그저 잡아주는 사람이 아니라, 날 잡아서 넘어지지 않게 해줄 거라는, 다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없으면 지면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는 법이다. 나는 사실 아직도 확신이 없어서 통 자전거를 타질 못한다. 나츠메는 금방 배우더만... 메마르게, 곤란하다는듯 웃던 아이가 친구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걸 보니 다른 어느 때보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나츠메가 타츠마와 다른 아이들을 통해 인연을 만들고 의지하는 법을 배워간다면, 요괴들이나 퇴치사들을 통해서는 언젠가 헤어질 것이라는 걸, 서로 언제나 항상 겹쳐질 수는 없고 상처를 주고받거나 오해를 할 수도 있다는 것, 심지어는 영원히 서로 다른 생각으로 살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워가는 것 같다. 슬프고 괴롭지만, 그래도 그것에도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나츠메는 생각한다. 그리고 이전보다 조금쯤 더 성장해 있다. 그래서 읽는 나에게도 힘을 준다. 아직은 괜찮다고, 반짝거리는 것들이 눈앞에 있다고, 나도 이전보다 조금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게 해준다.

신의 궤도 1~2
다 읽었다. 후딱. 빠르게. 반전. 그것도 조금 아픈 반전이 있었다. 그래서 마음이 복잡해져 버렸다. 배드 엔딩은 아니다. 배드 엔딩은 아닌 것처럼 그려졌다. 그렇지만 배드 엔딩 같았다. 인간이, 특히 주인공이 주체가 아닌 수단으로 그려져서, 거기에 주체적인 면이 있었나 하면 그것도 모르겠어서... 마음이 떨떠름했다.  내가 갖고 있던 모든 것이 어떤 거대한 목적을 위한 수단이었음을 알게 될 때, 그것에 만족하고 기뻐하는 인간도 있을 수 있고,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도 있을 수 있겠지. 만약에 그런 어떤 것이 있다면 차라리 멋진 징조들처럼 노력하고 뒤틀려하고 그런 것이야 말로 그 목적으로 향하는 것이었다고 하는 편이 좋았을 것 같은데. 이 소설속의 주인공들이 하는 '납득'은 어딘가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비행기와 유목민의 이야기는 참 마음에 들었지만 말이다. 인간은 신이 그려놓은 거대한 틀 안의 하나의 나사일 뿐이라면,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내가 뜻하는 바대로 결정해서 움직여 나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뜻과 의지에 따라 만들어져서 그 목표를 향해 그저 나아가고 있을 뿐이라면, 모든 과정들, 모든 내 마음의 흔들림과 만남과 아픔들에 어떤 의미를 둘 수 있는가.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거대한 목표따위 인간은 모르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그런 것이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 이순간은 목적으로 삼아, 지금 내가 체험하는 지금 이것만이-내가 생각하는 순간 내가 존재하는 것인냥, 지금 내가 생각하고 체험하는 순간만이 진실이라고 믿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처음 읽는 아프리카 역사
못 읽고 버려두었다가 겨우 다 읽었다! 근데 우울해... 외국 사람이 쓴 거 말고, 아프리카 사람이 아프리카 말(스와힐리어라던가 안되면 아랍어라도...)로 쓴 역사책을 읽어보고 싶다. 저번에 한길사 북카페에서 아프리카 동화... 랄까 신화책을 보았는데 그런 것도 괜찮고. 어쨌거나, 어디든 권력자는 권력을 빼앗기기 싫어하고 '불쌍한 아프리카인'이라는 것도 하나의 클리셰랄까, '신비한 동양인' 만만치 않게 왜곡된 이미지에 불과한 것이라는 건 확실히 느꼈다. 아프리카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평화로운 듯해도 겨우 몇십년 전에는 이땅도 전쟁터였고, 지금도 어딘가는 전쟁터이고, 인간은 참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는 동물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끔찍한 굴레를 어떻게 해야 벗어날 수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맨 마지막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의 나라-라기보다는 부족? 근처 땅의 전체 사람들? 하나의 아프리카를 상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도 '민족'과 같은 이미지에 불과하긴 하니까... -를 위해 어떤식으로든 방법을 궁리하는 사람들이 나와서 그나마 조금 위안을 받는다. 이러한 세계에서 난 무엇을 노력해야 할까. .. 역시 세이브더칠드런의 모자뜨기나 하자(...) 애들이 건강하고, 올바르게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그 이상은 그 아이들이 알아서 해나갈 수 있겠지. 

읽을 것
동유럽 신화
절해고도에 안치하라
한밤의 아이들 1~2

그러고보니 방치하고 안 읽은 게 더 많았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추재기이
루시퍼 이펙트...

옛날에 읽다만 인권의 발명이라든가(...) 요즘 정말 책 안 읽는다. 책 말고도 재미난 게 너무 많다. 출판사가 이래서 불황인가봐. orz



창작 면허 프로젝트 - 대니 그레고리 실용

창작 면허 프로젝트
대니 그레고리 지음, 김영수 옮김 / 세미콜론
나의 점수 : ★★★★★





원래는 그림 그리기 책들이 30% 할인한다고 해서 구경만 하려다가 질러버린 책이다. 그냥 흔한 스케치 방법론이 담겨 있지 않을까 했으나 사실 그림 그리는 방법은 3분지 일도 되지 않고, 이사람이 그림을 그리면서 삶이 어떻게 변화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그리고 예술을 대하는 마음가짐이란 어떠해야 하는지, 인생을 어떻게 즐기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담은 에세이집에 가까웠다. 이러면 사실 속은 기분이 들어야 하는데 왠걸. 나도모르게 스케치북을 사고 어느 순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이 책이 다른 어떤 책들과도 다른 점은, 어떠한 기법보다도 사물과 사람을 바라보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는 것이다. 머그컵의 윤곽을 따라 그려보라는 저자의 말에 마침 마시고 있던 컵을 노려본다. 단순히 머릿속으로 '머그컵'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둥근 모양의 컵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형광등 아래 푸르게 빛나고 약간 넙적하고 반들거리고 커피얼룩이 울퉁불퉁하게 남아 있고, 유약이 뭉쳐 조그마한 흔적이 남아 있고, 공장에서 찍혀 나올 때에도 '완전한 원'으로는 나오지 않았을 머그컵. 

그러자 어린 시절 다녔던 화실 선생님이 가르쳐주셨던 것들이 떠올랐다.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대로 그리지 말고, 사물의 진짜 색을 보라던 말. "사과가 무슨 색으로 보여?" "빨간 색이요." "정말 그래? 자세히 한번 더 봐봐."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답을 알려주던가. 그것만이 아니라는 말만 반복하며 자꾸 자꾸 어떻게 보이냐고 묻기만 하시는 선생님의 말씀에 입술을 댓발은 내밀었다. 근데 이제는 안다. 그때 내가 배운 것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또 하나의 기쁨을 주었다는 사실을. 원체 둔하고 섬세하지 못한 인간이지만, 미술에 재능이라고는... 글쎄 10년을 배웠지만 영.. 어린 시절 그 흔한 사생대회 상 한번 타보지 못했을 정도로 꽝이지만 그래도 그림이 얼마나 재미나는 것인지 알고,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단순한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섬세하게 각기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는지를 안다. 나는 그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미술을 배워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도 그랬다. 미술을 좋아했지만 돈벌이가 되는 것을 하겠다며 광고업계에 진출하여 잘 나가던 어느날. 아내가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에 이르고, 잘 나가는 와중에도 새벽 네시만 되면 악몽을 꾸고 벌떡벌떡 깨어나게 되었을 때, 저자는 펜과 스케치북을 잡고 아침 식사와 욕실 서랍 따위를 그려나가면서, 아내, 친구, 동네에서 만난 노숙자들을 그려가면서 치유를 받았다. 내 인생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내가 뭘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느끼게 되었던 순간, 모든 것을 포기하고 붓과 펜을 쥐면서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고 자신의 일상이 주변의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그림을 잘 그리거나 못 그리는 것과는 관계가 없는 문제였다. 그저 꾸준히 바라보고 관심을 갖고 그 관심을 표현하려고 선 하나에 신경을 쏟는 그 순간이, 황폐하게 망가진 마음을 보듬어 주었던 것이다. 

미투데이에도 올렸지만, 이건 계속해서 파다보면 어느순간 다른 것들을 잊고 나 자신과 그 대상만이 남는 몰아의 경지에 이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나의 예로는 원고 교정에 몰입해 있을 때가 그렇고.. ㅎㅎㅎ 그림 그릴 때도 대충대충이 아니라 집중해서 온전히 마음을 쏟아 그릴 때면 그 순간의 충만한 감정이 있다. 마음이 조급하거나 잘해야 한다고 이것저것 신경 쓰면서 눈치보면서 할 때는 사실 그런 느낌도 못 받고 결과물에 연연하게 되지만,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되면 결과물 자체는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게 된다. 그리고 사실 초조해하지 않고 성급하게 마무리지으려 하지않고 끝까지 보면서 '보이는 대로' 그리다 보면,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물건이 나오게 된다. 이 책에서는 계속해서 그이야기를 반복한다. 그냥 즐기라고. 포기하지 말고, 주변을 신경쓰지 말고, 계속해서 꾸준히 즐기기만 해도 그림이 달라질 거라고. 낙서 같은 그림도 그 자체가 예술이 되는 순간이 올 거라고. 인간은 창작을 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게 만들어졌다고 단언하는 저자의 말을 보니 정말 용기가 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유일하게 바라는 게 있다면, 막 그림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을 응원하는 것뿐이라고 했는데, 나에 한해서는 그 효과가 확실했던 것 같다.

근데 어릴 때 배울 때는 사실 그런 걸 잘 몰랐다. 항상 마무리가 허술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도 어디가 어떻게 허술한지 잘 몰랐는데 끝까지 집중해서 '잘 보는 것'을 성급한 마음에 잘 하질 못해서 그랬다는 것을 이 책을 읽다가 문득 깨달았다. 내가 그때 그걸 깨달았다면 지금보다는 좀더 잘 (빈도로든 정도로든) 그리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아쉬워진다. 
 


남자, 다시 찾은 진실 - 스티브 비덜프 인문

남자, 다시 찾은 진실남자, 다시 찾은 진실 - 10점
스티브 비덜프 지음, 박미낭 옮김/푸른길

서평을 쓰는 데 얼마 전 검찰 총장이 한 발언이 떠올랐다. 남자 검사들은 아이보다 일을 먼저로 여기고 행복보다 출세나 사회적 인정을 더 중시하지만 여자 검사들은 그렇지 않다던 발언 말이다. 나를 비롯한 많은 여자들이 여기에 울컥하긴 했지만 실제로 아이가 아플 때 직장을 조퇴하고 달려가는 것은 대부분 엄마이지 아빠가 아니다. 여전히 남자들은 아이 돌보기를 ‘사적인 일’이며 회사의 ‘공적인 일’을 위해서는 희생될 수 있는 사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사소한 것’을 희생해서 남자들에게 남은 것이 과연 무엇인가. 여기서 남녀 사망률이 가장 크게 차이나는 50~60대에 남자의 사망 원인 1순위가 자살이라는 통계 결과는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정말로 그들이 가정의 행복, 아이와의 시간을 갖는 일보다 훨씬 더 위대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면, 그들은 어째서 생을 끊으려 하고, 술독에 빠져 방황하는가. 어째서 그들의 가족들은 그들을 존경하지 않는가.
이 책은 이렇게 벼랑 끝에 선 모든 남자들을 위한 책이다. 그러나 남자들이 이렇게 희생하고 있으니까 여자들이 어떻게 해 주어야 한다는 식으로 변명을 늘어놓거나 얕은 위로를 하지는 않는다. 또한 안 그래도 부담을 스스로 그러모아 등에 지고 살아가는 남자들에게 현실과 거리가 먼 이상형을 따라하라며 부담을 주지도 않는다. 다만 여자가 여성 운동을 통해 굴레를 벗어던졌듯 남자도 깨닫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그 굴레를 벗어던질 수 있다고 귀띔하며 사랑, 양육, 직업 찾기 등의 일상적인 요소들에서 나타나는 남자로서 마땅한 책임감과 쓸모없는 굴레를 구분하고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가치 있게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리고 대단한 미담의 주인공보다는 택시 운전사, 농부, 병원의 안내원같이 평범한 남자들과, 더 나아가 주정뱅이, 실직자, 가정폭력범, 이혼 당한 사내 등 ‘패배자’로 보이는 남자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하여, 진짜 의미 있는 삶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사실 이 책의 작업은 개인적으로 무척 힘들었다. 남자들의 불행과 공허감이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아버지에게 용기를 내어 전화를 거는 사소한 행동만으로도 변화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왜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한 번 더 말을 걸어 보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자꾸 들어서 페이지를 넘길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책이 나온 다음에는 주변의 지인들에게 전에 없을 만큼 적극적으로 이 책을 권했다. 우리 책 좀 사달라고가 아니라 후회하지 말자고.
남자들을 위한 책이긴 하지만, 필자가 여자인지라 여자들에게 우선 권하고 싶다. 주변의 남자(아버지든 남편이든 연인이든 오빠든 동생이든 아들이든)들과 고민을 함께 하고 좀 더 나은 관계를 맺기를 바랄 모든 현명한 여자들에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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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에 "기획회의" 편집자 서평에 수록한 원고.

이런 책을 자주 안 보다가 봐서 그런지, 아니면 아버지 투병 기간과 겹친 작업 일정 때문인지 심정적으로 애증을 갖게 된 책이었다. 읽을 때마다 울컥하고 속에서 뭔가 치밀어 올라서 교정하는 데도 평소의 배는 걸린 것 같았다. 근데 생각했던 것보다 역시 잘 팔리지는 않아서, 사람은 한 우물만 파야지 괜히 다른 장르 껄쩍대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 정작 이런 게 필요할 남자들은 이런 감성적인 책 따위 필요없다며 승진하는 법 따위가 담긴 처세서며 증권이니 주식하는 법 담긴 실용서만 죽어라 파고 있을 것 같고...

여자고 남자고 당장 우리사회는 사회적 안전망이 더 미흡해서 가정 위한다고 잠깐 육아휴직이라도 했다간 당장 집 잃고 빚더미에 나앉아 정작 자식 육아는 하지도 못하게 될 가능성이 더 많지만... 만약 사람들이 좀더 많이 이런 생각을 갖게 된다면, 갓 태어난 아이를 위해 아버지로서 함께 시간을 보내주려고 휴직을 신청할 수도 있다는 것이 자신의 권리임을 알고 그것으로도 먹고 살 수 있는 것이 당연한 권리임을 알고 그 권리를 누리려고 노력할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자란 아이는 또 당연히 자신의 아이와 사회에 대해 그렇게 여유있게 생각하게 될 테고, 말 그대로 '남성성의 강물'이 다시 풍부해질 수도 있을 텐데 말이야.

가난해서 하루의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무슨 소리냐고? 오히려 그렇기에 좀더 나은 형편인 사람들이 더욱더 그런 사회를 만들려고 먼저 바뀌어야 하는 게 아닐까. 사람을 부리는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그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 육아휴직도 시켜주고 그럴 수 있는 것 아닐까.


볼 때마다 복잡한 심사를 갖게 하는 애물단지지만 그래도 읽으면 읽을 수록 깊은 맛(?)이 있는 좋은 책이다. 제발 잘 좀 팔려 주면 좋겠다. 이게 많이 팔린다고 세상이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거 읽는 사람들이 한번만 더 생각해주면 0.001퍼센트라도 세상이 변해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http://hibernate.egloos.com2011-08-23T01:56:560.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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