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책을 좀 적잖이 질렀는데 이러다가는 또 리뷰를 한참 안 쓸 거 같아서 위기의식에 리스트를 남겨 놓는다.
읽은 것
R.P.G.
미야베 미유키는 참 겉으로는 멀쩡한데 속이 이상하게 비뚤어진 사람도 잘만 그려내는구나 싶었다. 범인이 그토록 일그러지게 된 것이 어쩐지 이해가 되고, 그 주변 인물들 또한 어딘가 한두 군데씩 이상한데 그것이 이세상에 있지 않을 법한 게 아니라 너무 있을법해서 무서웠다. 범인이 누군지를 밝혀내는 것은 사실 그렇게 어렵지 않고, 좀 어이없는 함정도 있어서 범인과 트릭을 '추리'해 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별로 반기지 않겠지만 미야베 미유키식의 심리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무척 반길 만한, 임팩트 있는 작품이다. 아무래도 범죄 자체의 규모도 작고, 소설 자체가 벌어지는 배경도 좁으니까 이유나 모방범 같은 묵직함은 좀 덜하지만, 임팩트 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자기애에 대한 이야기이고 '온라인'에 대한 미야베 미유키식의 의견이 담긴 이야기이다.
빌 브라이슨의 아프리카 다이어리
얇다는 건 알았지만 생각보다 더 얇다! 아쉽다! 기부를 좀더 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는 점에서, 당장 아프리카로 자원 봉사를 떠나야할 것 같다는 점에서 이 책은 소정의 목적은 다하고 있다. 자기든 남이든 상관없이 폼재지 않고 우스꽝스럽게 표현하면서, 한편으로는 그 모든 것에 연민과 애정을 가진 빌 브라이슨 특유의 글솜씨가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준다.
발칙한 미국 횡단기
이것도 빌 브라이슨. 이 사람의 여행기는 이렇게 보니 대부분 다 산 모양이다. 영국 산책만 사면 되나. 읽고 있으면 신이 난다. 80년대의 미국 횡단기라 시기적으로는 조금 엇나가 있지만 당대의 백인 중산층-지식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참 잘 알 수 있다. 자연을 구경하러 가서 자연을 쓰레기장으로 만들고 오는 캠핑카족들, 무엇을 기념해야할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되는대로 만들어놓은 기념관들 등 관광지 특유의 풍경들. 그리고 부유한 휴양지의 쾌적한 광경과 대비되는 다운타운의 황폐와 원주민 보호구역의 메마름. 아주 쓸모 없고 이상한 물건일지라도 새로운 것이라면 아무튼 사고 싶어하는 소비문화까지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모든 것이 어딘가 조금 우스운 광경들뿐이다. 그렇지만 결국은, 오래쓴 물건을 욕하면서도 고쳐서 다시 쓰는 것처럼, 그에게는 미국이 왠지 애증의 대상인 것처럼 보인다. 오래전 떠났던 고향이라는 것일까. 뭔가 심각할 것같기도 하고 훈계조일 것 같기도 하지만 이남자는 그러는 법이 없다. 남들을 까는 만큼 자기의 어리석음을 더욱 깐다. 시행착오와 어리석은 미신과 착각, 오해들까지 날것 그대로 까발리며 웃음을 자아낸다. 읽다보니 기분이 좋아져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졌다.
나츠메 우인장 1~11
나츠메가 친구와 마음을 터놓고 의지하게 되는 광경이 천천히 천천히 펼쳐진다. 하얀 도화지에 살금살금 투명하고 고운 색깔이 점점이 모습을 그려가는 것같이. 지금까지 중 가장 인상이 깊었던 것은 나츠메가 친구들에게 처음으로 자전거를 배우게 되던 때였다.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러 가자고 하자, 나츠메는 자전거를 못탄다고 말한다. 아직도 안 배웠냐고 묻는 아이들에게, 나츠메는 희미하게 웃으면서, "자전거는... 뒤에서 잡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배울 수 없잖아."라고 말한다. 나는 자전거를 탈 줄 모른다. 엄마나 아빠는 바쁘고 오빠가 유일하게 나랑 놀아주었는데, 오빠는 딱 한번 나에게 자전거를 가르쳐주다가, 한 30분만에 포기했던가? 내가 포기했던가? 너무 무서워서. 아마도 오빠를 믿지 못했던 걸까? 그저 단순히 내게 균형감각이 지독히 없어서 그랬을지도 몰라. 근데 아무튼 자전거를 배우려면 넘어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필요한 거 같다. 그저 잡아주는 사람이 아니라, 날 잡아서 넘어지지 않게 해줄 거라는, 다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없으면 지면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는 법이다. 나는 사실 아직도 확신이 없어서 통 자전거를 타질 못한다. 나츠메는 금방 배우더만... 메마르게, 곤란하다는듯 웃던 아이가 친구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걸 보니 다른 어느 때보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나츠메가 타츠마와 다른 아이들을 통해 인연을 만들고 의지하는 법을 배워간다면, 요괴들이나 퇴치사들을 통해서는 언젠가 헤어질 것이라는 걸, 서로 언제나 항상 겹쳐질 수는 없고 상처를 주고받거나 오해를 할 수도 있다는 것, 심지어는 영원히 서로 다른 생각으로 살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워가는 것 같다. 슬프고 괴롭지만, 그래도 그것에도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나츠메는 생각한다. 그리고 이전보다 조금쯤 더 성장해 있다. 그래서 읽는 나에게도 힘을 준다. 아직은 괜찮다고, 반짝거리는 것들이 눈앞에 있다고, 나도 이전보다 조금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게 해준다.
신의 궤도 1~2
다 읽었다. 후딱. 빠르게. 반전. 그것도 조금 아픈 반전이 있었다. 그래서 마음이 복잡해져 버렸다. 배드 엔딩은 아니다. 배드 엔딩은 아닌 것처럼 그려졌다. 그렇지만 배드 엔딩 같았다. 인간이, 특히 주인공이 주체가 아닌 수단으로 그려져서, 거기에 주체적인 면이 있었나 하면 그것도 모르겠어서... 마음이 떨떠름했다. 내가 갖고 있던 모든 것이 어떤 거대한 목적을 위한 수단이었음을 알게 될 때, 그것에 만족하고 기뻐하는 인간도 있을 수 있고,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도 있을 수 있겠지. 만약에 그런 어떤 것이 있다면 차라리 멋진 징조들처럼 노력하고 뒤틀려하고 그런 것이야 말로 그 목적으로 향하는 것이었다고 하는 편이 좋았을 것 같은데. 이 소설속의 주인공들이 하는 '납득'은 어딘가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비행기와 유목민의 이야기는 참 마음에 들었지만 말이다. 인간은 신이 그려놓은 거대한 틀 안의 하나의 나사일 뿐이라면,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내가 뜻하는 바대로 결정해서 움직여 나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뜻과 의지에 따라 만들어져서 그 목표를 향해 그저 나아가고 있을 뿐이라면, 모든 과정들, 모든 내 마음의 흔들림과 만남과 아픔들에 어떤 의미를 둘 수 있는가.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거대한 목표따위 인간은 모르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그런 것이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 이순간은 목적으로 삼아, 지금 내가 체험하는 지금 이것만이-내가 생각하는 순간 내가 존재하는 것인냥, 지금 내가 생각하고 체험하는 순간만이 진실이라고 믿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처음 읽는 아프리카 역사
못 읽고 버려두었다가 겨우 다 읽었다! 근데 우울해... 외국 사람이 쓴 거 말고, 아프리카 사람이 아프리카 말(스와힐리어라던가 안되면 아랍어라도...)로 쓴 역사책을 읽어보고 싶다. 저번에 한길사 북카페에서 아프리카 동화... 랄까 신화책을 보았는데 그런 것도 괜찮고. 어쨌거나, 어디든 권력자는 권력을 빼앗기기 싫어하고 '불쌍한 아프리카인'이라는 것도 하나의 클리셰랄까, '신비한 동양인' 만만치 않게 왜곡된 이미지에 불과한 것이라는 건 확실히 느꼈다. 아프리카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평화로운 듯해도 겨우 몇십년 전에는 이땅도 전쟁터였고, 지금도 어딘가는 전쟁터이고, 인간은 참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는 동물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끔찍한 굴레를 어떻게 해야 벗어날 수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맨 마지막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의 나라-라기보다는 부족? 근처 땅의 전체 사람들? 하나의 아프리카를 상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도 '민족'과 같은 이미지에 불과하긴 하니까... -를 위해 어떤식으로든 방법을 궁리하는 사람들이 나와서 그나마 조금 위안을 받는다. 이러한 세계에서 난 무엇을 노력해야 할까. .. 역시 세이브더칠드런의 모자뜨기나 하자(...) 애들이 건강하고, 올바르게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그 이상은 그 아이들이 알아서 해나갈 수 있겠지.
읽을 것
동유럽 신화
절해고도에 안치하라
한밤의 아이들 1~2
그러고보니 방치하고 안 읽은 게 더 많았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추재기이
루시퍼 이펙트...
옛날에 읽다만 인권의 발명이라든가(...) 요즘 정말 책 안 읽는다. 책 말고도 재미난 게 너무 많다. 출판사가 이래서 불황인가봐. 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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